시작은 ‘왜 이걸 비싸게 사지?’라는 질문에서
예전엔 브랜드 로고만 봐도 안심이 됐다. 익숙하고, 믿을 수 있고, 실패 확률이 적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과연 이 브랜드가 가격만큼의 가치를 주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사한 제품을 로컬 브랜드에서 훨씬 저렴하게 판매하는 걸 보고, 의문이 생겼다. 이름값이 아닌 실질적 가치를 기준으로 소비를 해보자는 생각에, 브랜드 제품 대신 로컬 브랜드 제품만 사용해보기로 결심했다.
첫 시작은 생활용품이었다. 치약, 샴푸, 세제처럼 자주 쓰지만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품목부터 바꿔봤다. 지역 약국에서 판매하는 소형 업체 제품이나, 로컬 마켓에서 찾은 핸드메이드 상품을 사용하면서 의외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 ‘브랜드’가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 자체가 주는 만족감이 더 크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무명 브랜드의 물건은 때론 포장도 소박하고, 마케팅 요소도 적지만 그만큼 진솔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물건을 만든 사람’의 철학이나 손길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유명세나 광고 없이, 정성껏 만든 제품을 직접 고르고 사용하는 경험은 마치 소비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지지하는 느낌이었다.
소비 기준이 ‘인지도’에서 ‘가치’로 옮겨가다
한 달간 로컬 브랜드를 사용하며 가장 큰 변화는 소비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많이 쓰는 브랜드냐’, ‘SNS에서 본 적 있냐’가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이 제품이 나에게 어떤 경험을 주는가’, ‘가격 대비 얼마나 만족스러운가’가 기준이 되었다.
브랜드가 주는 안정감은 분명 크지만, 그 이면에는 무의식적인 소비도 있었다. 로컬 제품을 선택하며 나는 매번 ‘이 제품을 고르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눈에 익어서가 아니라, 성분이 좋기 때문에, 향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디자인이 내 취향이기 때문에. 소비가 점점 ‘설득 가능한’ 행위가 되었다.
특히 뷰티 제품이나 식품처럼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는 영역에서는 오히려 로컬 브랜드가 더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인 니즈에 더 섬세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성비, 가심비를 넘어, 이제는 ‘가치소비’라는 단어가 내 구매 결정의 기준이 되었다.
내 돈이 향하는 방향을 바꾸는 실험
로컬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는 일은 단순한 절약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내 소비가 향하는 방향에 대한 선택이기도 했다. 대형 브랜드를 고를 때는 내 소비가 어디로 향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로컬 브랜드를 선택하면서, 이 소비가 누군가의 생계, 창업, 창작을 지지한다는 감각이 들었다. 작은 선택 하나가 사회적 의미로 확장된다는 것을 체감하게 됐다.
이 실험 이후로는 ‘국산’, ‘소상공인’, ‘공정무역’ 등의 키워드가 붙은 제품에 더 관심이 생겼고, ‘광고가 적은 제품을 내가 먼저 발견했다’는 즐거움도 컸다. 소비가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았다. 마치 내가 콘텐츠 큐레이터가 된 듯, 세상에 소개하고 싶은 물건을 찾아다니는 과정이 되었다.
이제 브랜드가 전부는 아니다. 이름보다 중요한 건 ‘의미’다. 나의 소비가 더 깊고, 더 단단해졌다고 느낀 건, 브랜드보다 사람을 선택하는 소비를 하고 있다는 실감 덕분이었다.